2003.03.08 10:44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불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가 무엇을 가지고 와서 무엇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해석하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어느 날 "대행"이라는 여승이 하는 법문을 케이블 TV에서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공수래공수거이니 사업이 잘되면 잘되는 대로 못되면 못되는 대로 그 현실을 인정하고 편안하게 살아라 이럽디다.
누가 무엇을 가지고 가겠다고 애착을 가져봐야 다 헛된 일이라는 게지요.
진짜 많은 선남선녀들이 그 승려가 하는 말이 옳다고 경청하고 있습디다.
한술 더 떠서 그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작하겠다는 듯이 메모하는 사람까지 있습디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승려가 과연 사업이나 생업에 실패했을 때의 아픔을 알기나 하고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승에 올 때에 무엇을 가지고 온 사람도 또 저승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 사람도 분명히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한계 아닙니까?
그러니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 사업이 영속적으로 번창해서 실패의 아픔이나 고뇌를 겪지 않게 다듬어주면 어디가 동티가 납니까?
"인과응보"
분명히 의미있는 말입니다.
좋은 인연은 계속 좋게 유지하게 이끌어주고 나쁜 인연이 있어 고생을 한다면 그 나쁜 인연을 풀어주고 엮어주어 좋게 다듬어주면 안됩니까?
나는 승려들이 산중에서 공부했다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입니다.
공부하면 무엇합니까?
남들을 위해 베풀고 사용할 때에 그 공부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 아닐런지요?
혼자서 독야청청하면 무엇합니까?
세상살이의 아픔도 모르고 즐거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감히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고 가르쳐줄 수 있단 말입니까?
생, 노, 병, 사
우리 인간이 숙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 네 가지의 숙제는 아무도 풀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단 한가지 살아있는 동안에 편안하고 즐겁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불교를 잘못 믿으면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고 기독교를 잘못 믿으면 배타주의에 빠지기 쉽다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줄 압니다.
어찌 사랑과 자비를 말하는 종교가 배타적이고 허무주의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자애, 자존"을 근본으로 해서 이 세상의 만 사람과 만물을 사랑하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처나 예수는 지금의 자기네 집들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오냐 오냐 잘했다"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