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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2 16:09
01.11.14 사람의 四柱, 觀相
 글쓴이 : admin
조회 : 615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주 및 관상에 대한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주나 관상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여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태아의 사주를 좋게한다는 핑계로 인위적으로 출산 일시를 정해주기 위해 수술로 출산까지 하고 있으며 또 대길일이라 하여 너도 나도 같은 날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큰 난리를 치르듯이 사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주니 관상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옛날에 비과학적이였던 시대에나 통용되는 것이지 지금처럼 모든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발달된 문명 사회에서는 언감생심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무를 칼로 자르듯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도 무수히 많은 변수를 가진 인간 및 사물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하물며 전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을 생각하면 그 변수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전에 결정된 어떤 인자는 없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우리가 그야말로 똑같은 결과를 (여기서 결과는 인생의 역정이겠지요) 가져야하는 똑같은 인간이나 실험대상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증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만약에 복제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생물적인 특성만 같다뿐이지 초현실적인 입장에서까지 똑같은지 여부를 우리는 알 수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불가능한 면만을 강조하여 양시론 내지는 양비론의 입장에 서서 예리한 비판의 예봉을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데 저는 분명히 우리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에 나름대로의 역할과 의무를 규정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야담과 설화에서 나타나는 많은 태몽에서 왕이 될 자 라든지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들에 대한 꿈속의 이야기 등에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지금도 자녀를 가지신 분들 중에서 그런 태몽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개개인의 적성이나 성격 또 각 분야에 대한 능력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니, 우리는 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분명히 해야 할 역할을 부여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역할과 의무가 사전에 짜여진 각본대로만 움직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생물에서 인류가 화학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닌 자연상태의 광물에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쇠는 원소기호의 FE, 그 쇠는 여러 가지 형태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농기구로 어떤 것은 가구의 부속으로 또 어떤 것은 기계로 또 어떤 것은 그것들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이용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본질인 쇠의 성질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돌도 마찬가지입니다. 석축으로 계단으로 다듬어지고 부처로, 존경받는 인물로도 변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돌 또한 그 자체의 성질이 변질된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체의 역할과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얼마나 어떻게 누가 다듬고 가꾸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모양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소나무가 자란 모습의 키가 크지도 않으면서 모양도 갖가지다 정원수도 좋을 것 같아 미국의 정원에 갖다 심었더니 키만 훌쩍 커버려 본래 의도한 목적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논리 전개를 할 때 6하 원칙을 많이 이용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 어떻게 하는 6하 원칙 중에 사람의 사주, 관상에 관한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 등등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태어난 나라, 나를 낳아준 부모 그리고 나 자신과 태어난 시기는 이미 결정되었으니 앞으로는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누가 날 키워주며, 어떻게 키워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성장한 후에는 그전까지의 여러 조건을 자양분 삼아 내가 어떻게 모양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책임이라고 해야되겠지요.
요즈음 사교육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매우 뜨겁습니다.
여러 매체에 출연하셔서 말씀하시는 부모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은 자식들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어렵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예체능계 학원설립이 공인되고 십 수 년이 지난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음악, 미술 학원을 거친 아이들 중에 과연 얼마의 아이들이 그것을 실생활에 이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효능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아이의 적성이나 성격 그리고 소질을 정확히 파악한 연후에 꼭 필요한 특별교육(과외라고 해도 좋다)을 시켜야 하는데 무조건 남이 하니 시킬 뿐입니다. 부모인 자신이 옆사람에게 기죽기 싫어하는 것을 아이들 기죽이기 싫어 시키는 것이라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의 역할, 쇠의 역할, 나무의 역할 흙의 역할 등 각자의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이것을 모양 꾸미기 쉽고 단단한 역할을 한다고 전부다 콘크리트로 만들려하니 그 속에 들어간 쇠는 옳게 처리되지 못해 산화되어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고, 나무나 흙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돌의 역할을 할 이라 그 속에 들어가면 제역할을 다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진짜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데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크게는 역할과 의무를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살면서 나타나는 각론적인 것은 가꾸고 다듬기 나름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못한 아쉬움을, 한을 풀기 위해 자식을 키우지 말고 자식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잘 할 수 있도록 인생 선배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충고하고 지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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