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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2 14:37
01.11.14 본능과 이성
 글쓴이 : admin
조회 : 691  
동물과 식물의 본능적인 면을 찾아보면 정말 어떻게 저렇게 조화로운가 하고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먼저 식물의 경우를 보면 기후와 바람에 따라 키가 큰놈과 작은놈, 잎이 큰놈과 뾰족한 놈, 벌나비의 도움으로 수정하는 놈과 그렇지 못해 수많은 포자를 날려보내서 그중의 하나가 암술과 접하게 만드는 놈, 뿌리내린 자리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곤충을 먹어서 그 부족분을 보충하는 식충식물 또 죽은 나무에서만 생장하여 환경을 정리하면서도 아무런 적의 침입없이 생활하는 버섯류들, 흐르는 물만을 이용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식물들 아예 날아다니는 새의 먹이가 되어 그들의 힘으로 영역을 넓혀 가려는 것들
동물의 피부에 붙어 영역을 넓히는 놈들 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방법을 택해 생존과 번영을 기구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또 어떻습니까?
남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기생동물과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공생동물들 그리고 조그만 초식동물에서 거대한 초식동물 그리고 작은 육식동물과 거대한 육식동물을 보면 먹이사슬의 조화가 그렇게 절묘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놈들은 일부일처, 어떤 놈들은 일처다부 또 어떤 놈들은 일부다처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유전자를 번성하려는 의지와 자신의 종을 번성시키기 위한 처절한 혈투를 보면 그 또한 기묘하기가 한량없습니다.
사자와 같이 자기 새끼가 아닌 것은 물어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처절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과 식물의 경우에는 절대 도를 넘치지 않는 것을 여러분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산불로 황폐해진 곳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곧 생태계가 회복되는데, 인간이 조림한답시고 손을 대면 그 성장속도와 환경회복이 매우 더디게 되거나 오히려 황폐해진다고 까지 합니다.
일본인들이 그 특유의 기질로 조림사업을 시행하고는 한동안 자랑하던 숲도 지금은 토질의 산성화 및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매우 큰 고민거리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인간의 손길이라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가 더 나아가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식물은 무질서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도 그 속에 나름대로 질서와 균형이 있고 어느 특정한 집단이 과도하게 영역을 넓히면 그런 경우에는 꼭 천적이 나타나서 생태계의 조화를 이루어 줍니다.
동물도 어느 특정 종류가 홀로 독야청청하면서 마음대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힘의 논리로만 한다면 코끼리, 사자, 하마, 악어 등이 모든 약한 동물을 물리치고 수적으로 매우 우세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아니 인간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온 것만 보아도 확실합니다.
곤충 중에서도 개미를 보면 여왕개미, 수개미, 병정개미, 일개미등 자신이 부여받은 역할에만 충실할 뿐 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신의 능력외의 부분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얼마나 조화롭게 만들어졌으며, 또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의 본분을 잘 지키고 있는지도 알수있습니다.
三一神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人物同受三眞 曰 性命精, 人全之, 物遍之 즉 인간과 동, 식물이 똑같이 , , 의 기운을 받았는데 다만 인간은 좀 더 완전하고 동식물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도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가만히 내버려두면 조화롭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정상적으로 인류의 수가 증가하고, 특성지역에 밀집해서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러운 조화가 깨뜨려지고 이기적인 혹은 독선적인 행태가 횡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법과 규칙을 제정하여 그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전체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행하는 各各의 행위를 법과 규칙만으로는 제어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사후 약방문 격으로 항상 피동적으로 사태 해결에만 급급하게 되니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 敎育을 통해 습관화 내지는 체질화시켜 사전에 방지코자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중세 유럽에서의 왕권 천부설은 일부 지도자의 권력독점과 권위를 지키고 그 정당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였습니다마는 저는 여기에서 감히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에 각자의 역할과 능력을 부여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물일을 할 사람, 흙일을 할 사람, 쇠일을 할 사람, 불일을 할 사람, 나무일을 할 사람 등등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복잡다단해 짐으로 해서 그 일의 종류가 엄청나게 세분되었으므로 그것을 감안을 해야 될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참된 삶을 영위했다고 하겠습니까?
하는 일의 양과 질은 각자가 얼마나 자신을 충실히 계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마는 그 크나큰 흐름에 순응할 때는 생활이 좀 더 편안하고 일이 일로만 생각되지 않고 즐거운 가운데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지만 그 범주를 벗어날 때에는 모진 고난과 고통이 동반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제도와 규율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원천적인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능과 본성에 입각한 이성으로 무장하기 위한 부단한 敎育必要한 것입니다.
법은 간단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어제의 불법이 오늘의 준법이 되는 인간의 얄팍한 지혜의 소산인 법치주의가 빛을 잃도록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강자의 편에 서서 기만하는 인위적인 법제도 이전에 본능과 본성을 기간으로 한 도덕으로도 충분히 규율이 확립되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인 사실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 자연을 개조하려는 무모한 발상을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본능에 의지해서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本性은 좀 더 우월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연에 대해 더욱 겸허하게 행동해야 하고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全之하다는 것이 잘될 때에는 큰 행운이 되겠지만 만약 오용, 악용 혹을 남용된다면 그것이 곧 인류 파멸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본성과 본능에 이성이 가미된 人性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강원도 고성 지역의 산불 피해지역에서도 자연 생태계의 자생력이 얼마나 강하며 인위적 조정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 줍니다.
인위적인 것은 그 바람에 개인의 이익, 집단의 이익, 개인의 욕심이 내재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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