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13 18:47
타고난 제 그릇을 찾아먹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힘들게 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본 모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타고난 본 모습을 모르니 그 그릇을 찾아먹는 것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감안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남의 눈치도 많이 봐야 합니다.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자신을 찾으려고 안달하면서 더욱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생행로가 정해진다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 놈의 전공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인생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중에 자기의 전공을 살려 실생활에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경우는 결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돈 들이고 시간 들여 공부한 전공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결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이용해서 우리의 본 모습이 어떤지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 답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먼저 우리의 타고난 그릇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 홉들이 작은 그릇을 타고 태어났다면 그 그릇에 걸맞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릇이 작게 태어난 사람이 욕심을 부려 많이만 담겠다면 언젠가는 그 그릇이 깨어져 버릴 겁니다.
반대로 그릇을 크게 받아온 사람이 보통 사람들과 같이 대충 대충 먹고만 살겠다고 게으름을 피우면 그 그릇 속에 옳은 물건들이 담기지 않았으니 그 빈 공간에 필요없는 쓰레기들만 가득 담길 겁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는 우리 인간들이 태어날 때에 나름대로 그릇의 크기가 정해진다는 것도 몰랐고 또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막연한 "원죄"라는 개념으로 우리들 모두를 죄인으로 몰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라는 허망한 말로 우리들 모두를 이 세상에서는 어쩌지 못할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명당에서는 "영과 육의 세계가 공존" 한다는 간단한 원리를 깨우치면서 영적인 존재들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흐름을 알았습니다.
먼저 내 그릇의 크기를 알고 그에 대응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크게 낭패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 기도요, 기도 속에 생활"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편안하고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영위하려면 여러분들도 꼭 기도를 올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