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5.16 06:51
나라에 충신이 되어라?
내가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입니다.
내가 담당자로서 하는 말을 하도급 업체에서 믿지 못하고 정상적인 구매 절차를 밟지 않은 사안에 대해 머뭇거리며 시간을 지체할 때에 내가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를 믿지 말고 회사를 믿어라
얼마나 큰 회사인데 당신에게 피해를 입히겠느냐?"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나 싶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사나 그 어떤 단체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는, 인격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억지를 부린 꼴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나를 믿고 따르십시오
내가 책임지고 그 일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라에 충신이 돼라’
유가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 차분하게 한번 되짚어봅시다.
공자도 옳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해 수많은 나라를 전전하지 않았습니까?
공자는 과연 어떤 나라에 충성을 바치기 위해 온 세상을 전전헸겠습니까?
자기가 몸도 마음도 다 바쳐 충성할 나라 하나 옳게 찾지도 못한 공자가 말하는 나라의 충성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공자가 한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습니다.
뭔가 앞과 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5공화국 당시의 장세동 안기부장은 충신에서 역적으로 몰렸습니다.
6공화국 당시의 박철언 장관도 역시 당시에는 충신이었을지 모르나 다음 정권하에서는 역적으로 몰려 몰락하지 않았습니까?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권하에서 충신이라 갖은 권세를 부린 사람들도 역시 역적으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된 사람이 어디 한 둘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노무현 정권에서 충신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역적으로 몰릴 우려가 다분합니다.
그들이 한 시절에는 나라의 충신으로 갖은 영광을 누리다 파멸한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끈다는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들거나 고안한 그 어떤 것도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않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예전에 누가 무슨 말을 했다 하면 그 깊은 의미를 찾아 깨닫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작정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또 행동합니다.
바로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판단의 고비를 지혜롭게 넘어갈 때에 필요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역적이 내일의 충신이 되고 반대로 오늘의 충신이 내일의 역적으로 변하는 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