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03 10:41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는 어리석게 화약을 지고 불 섶으로 뛰어드는 꼴을 하면서도 당사자들은 바로 코 앞에 있는 불행도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더러운 똥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간이 사는 세상이 모두 다 그런 것 아니냐 하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보기에는 살아가는데 힘들 수밖에 없는 길로 접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가는 길만이 최고요 최선의 길이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산을 넘으면 분명히 따뜻하고 안온한 곳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 눈에 보이지 않고 제가 알지 못한다고 그런 곳이 어디있느냐 하면서 앙탈을 부리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제발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라"
명당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최고의 의사교환 수단이라고 믿고 사용하는 말의 어휘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과 내 말을 듣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이 분명히 단어는 같은 단어이나 그 속뜻은 전혀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영과 육의 공존을 주장하면서 사용하는 "영"과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영"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사전에 쓰인 의미로만 "영"을 생각하니 내가 말하는 바를 옳게 듣고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때로는 사전적인 의미나 알고서 고집을 부리면 좋으련만 허접한 지식으로 헛소리나 나불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준 정도의 의미로만 내가 말하는 "영"이라는 단어를 인식하니 어찌 내가 말하는 바를 옳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경"과 "불경"이 아무리 진실되고 깊은 뜻이 함축되어있다 해도 그 경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마다 모두 다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나 석가모니가 본래 전하려는 뜻을 달리 해석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겠다고 수많은 종파로 분리되지 않았습니까?
어찌 예수가 한 말이 그리고 석가모니가 한 말들이 읽고 느끼기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보기에는 지금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황폐해졌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좋은 스승을 만나기를 바라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옳은 스승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더욱 불행한 사람은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서도 제 고집과 아집 그리고 욕심 때문에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은 그래도 한번 살아볼만한 아름답고 재미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제발 살아야 한다면 재미있고 행복하게나 살 궁리나 하십시오.
행복은 바로 내 눈 앞에 있습니다.
보람은 바로 내 손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