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18 08:48
내가 한 고생이 너무 처절해서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데?
내가 천문을 열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한 고생이 너무나 처절해서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명당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가능하면 힘들게 만들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내가 예전에 돈이 없어 한 고생이 너무 심해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돈 이야기를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가정적으로 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지혜를 많이 줘서 하루 빨리 가정이 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이 마땅찮거나 아예 직업이 없어 마음 고생이 심한 사람인 경우에는 더 더욱 용기를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했습니다.
빨리 그리고 많이 기도해서 하루 빨리 옳은 직업을 얻는 것이 경제적이거나 가정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이요 최선의 방안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중생제도"라는 대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들이는데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마음 자세를 알지 못합니다.
내가 그들 앞에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니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일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르는 말에 토를 달거나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이르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내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내가 하는 말의 극히 적은 부분만 이해하고 실천했을 뿐입디다.
그러면 하루 빨리 그들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들이 내놓은 결과를 가지고 크게 나무라는 경우도 많은데 이 놈의 어리석은 중생들은 제 잘못은 모르고 내가 실정도 잘 알지 못하면서 자기네들을 너무 심하게 나무라는 것이 아니냐 하고 토라져 버립니다.
스스로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부터 그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나를 피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있게 보여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 눈빛 하나하나에서 조차 그 사람의 근본 심정까지 알아낼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우선에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따르겠다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으니 어찌 내가 말하는 바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설혹 받아들인다 해도 극히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날이 가면 갈수록 꾸지람의 강도도 높아지고 횟수도 빈번해지지 않겠습니까?
변명도 통하지 않고 핑계도 통하지 않으니 도망을 가다가다 마지막에는 아예 명당이나 나와의 인연을 끊어야겠다고 작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자기네들에게 해준 정성 자체는 부정하지 못하니 말은 이렇게 합니다.
"거사님의 말씀을 따르기가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거사님 뵙기도 민망하고 피해만 입히는 것 같아 여러 잠시 혹은 상당 기간 동안 명당과 멀리 떨어져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런데 사실은 내 말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따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말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만 근사하게 구사하면 내가 자기네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것으로 판단해서 그 따위 철없는 소리를 내뱉는 것이지요.
이제는 나도 어리석은 중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약간의 변화를 줘야겠습니다.
잘 대해주고 편하게 대해준다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한 고생이 너무나 처절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 근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