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전에 앉아 내가 북채를 치고 제자 한 사람이 사람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앞앞이 말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가슴앓이 했던 내용들이 제자의 입을 통해 술술 나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내 새끼 살리려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던 조상님들이 하나 둘 나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속을 풀어 놓습니다.
“내가 얼마나 안타깝게 기다렸는지 아느냐!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네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사니 무슨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느냐
답답하고 답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됐다
이제는 네 인연을 만났으니 걱정마라
몸도 마음도 얼마나 아팠느냐”
점잖은 체면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으려 해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뚝 뚝 눈물을 흘립니다.
그동안 막혔던 둑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명당에서 잠깐 동안 하는 이런 기도가 바로 무당들이 말하는 굿입니다.
번잡스러운 모든 예식은 제거해버린 굿에서 가장 중요한 공수만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는 것이지요.
굿을 하면 신들이 꼭 재물을 올려야 온답니까?
장구 치고 북을 쳐야 온답니까?
돈을 바쳐야 신들이 온답니까?
아닙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무슨 재물이 필요합니까?
돈은 왜 필요합니까?
이 세상에서나 사용하는 돈이 저 세상에서 어떻게 통용이 된답니까?
신들은 시공을 초월했으니 먹고 싶으면 그냥 장에 가서 푸짐하게 진열된 수많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텐데 꼭 어려운 사람들이 준비해준 음식만 먹는답니까?
장구 장단이나 굿거리장단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꽃배도 필요 없고 노잣돈도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한 힘없고 정신없는 영들은 자신들의 마음만 알아주면 아무 말 없이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높으신 분들은 힘들고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아무런 부담도 지우려하지 않으십니다.
잡귀들을 제거하고 난 후에 마음의 문이 열리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바로 나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됩니다.
단초가 바로 잡히면 그 다음에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태어나면서 받은 본 모습만 찾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요 평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의 기운, 즉 명당에서 말하는 영적인 존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간사스러운 인간들이 작은 욕심에 붙잡혀 처음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들고 고달프게 만드실 리가 없습니다.
크게 울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