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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26 11:48
11.03.07 언어(言語)의 한계
 글쓴이 : admin
조회 : 897  
우리 인간이 고안해서 이용하는 가장 유용한 의사교환 수단이 바로 말과 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말과 글이 없다면 서로의 심중을 어찌 알 것이며 서로의 심중을 모르고 의중을 모른다면 얼마나 많은 갈등이 발생하겠습니까?
작은 갈등들이 모이고 모이면 목숨을 건 투쟁이 일어나겠지요?
각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고 관습이 달라 발생하는 소소한 오해가 큰일을 망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소통을 말하는데 진정한 소통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또 진정한 소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소통을 말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뜻이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통을 말합니다.
남이 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상한 잣대로 사람과 사물을 판별하면서 보편타당성 있는 소통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닐까 싶습니다.
한 동안 통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대단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다.’ 라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통섭또한 다른 여러 말들과 마찬가지로 유행처럼 번지다 일회성, 단발성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통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통섭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이 장에 간다니 거름지고 따라간다는 꼴로 그저 통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따름입니다.
어떤 학자는 ‘Frame을 깨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인용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Frame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각 개인이 어떤 Frame에 걸려있으며 또 그 Frame을 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Frame을 깨라 한다고 그 Frame이 깨지겠습니까?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옛 시조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유효한 의사교환 수단이 말과 글뿐이니 말과 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의미와 개념부터 명확하게 규정짓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확실하게 개념을 정립해야 하고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사용해야 할 몇 가지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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